“아무리 잘나가는 삼성그룹도 삼성전자를 빼면 실적이 초라해진다. 삼성전자 실적이 급증하고 그룹 내 비중이 커질수록 전자 이외 계열사 CEO들은 오너 눈치 보기가 심해질 것이다.” (재계 관계자)

재계 1위 삼성그룹에 ‘미운 오리’ 계열사들이 갈수록 늘고 있다. 3분기 만에 1조원 영업적자를 낸 삼성엔지니어링을 비롯해 조선 경기 악화 직격탄을 맞은 삼성중공업, 경쟁사인 LG화학에 한참 밀리는 삼성석유화학 계열사들이 대표적이다. 줄줄이 마이너스인 이들 성적표를 받아보는 이건희 회장 고민도 깊어질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미운 오리 계열사는 국내 빅3 조선업체 중 한 곳인 삼성중공업이다. 삼성중공업은 지난 3분기 매출 3조5757억원, 영업이익 2058억원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냈다. 매출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12% 줄었고 영업이익은 40% 가까이 급감했다. 영업이익률(5.8%)은 지난 2년래 가장 낮은 수치다.

무엇보다 전통적인 주력 사업인 상선 대신 해양플랜트를 대거 수주한 데 따른 부메랑 효과란 우려다. 전 세계 조선 경기가 침체되면서 삼성중공업은 수익성이 떨어진 상선 비중을 줄이고 LNG선, 드릴십 등 해양플랜트 수주에 적극 나서고 있다.

하지만 성급한 수주 전략 탓에 부작용이 속출하는 모습이다. 올 초에는 2008년 당시 영국 플렉스LNG로부터 수주한 2조6000억원짜리 LNG FPSO(액화천연가스 생산저장하역설비) 4척 공급 계약이 해지되기도 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생하면서 플렉스LNG 측이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은 탓이다. 해지 금액은 지난해 삼성중공업 매출의 20%에 달할 정도로 만만찮은 규모다.

“삼성중공업이 상선 대신 고부가가치 해양플랜트 부문을 키우고 있는데 벌써부터 한계에 직면한 모습이다. 해양플랜트는 발주사 요구를 반영해 맞춤형으로 건조하기 때문에 해양플랜트 경험이 부족한 삼성 입장에선 추가 비용이 발생하고 납기가 지연되는 등 시행착오가 속출하고 있다. 한 종류 설계를 여러 척에 적용 가능한 선박과 달리 해양플랜트는 환경이나 생산량에 따라 설계가 달라져 그만큼 설계 중요성이 크다. 그런데 발주처인 세계 오일 메이저 회사들이 정작 해외 전문업체에 설계를 맡기는 경우가 많아 국내 조선업체 입장에선 실상 남는 것도 별로 없다. 조선 경기 악화에 시달리는 와중에 해양플랜트 부문으로의 체질 개선에 실패하면 삼성중공업이 머지않아 대규모 적자를 낼 수 있다.”

익명을 요구한 조선업계 관계자 얘기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경쟁사인 대우조선해양 납품 비리가 적발되면서 임원 60여명 전원이 사표를 낸 이후 삼성중공업 내부에서도 납품 비리 이슈가 수면 위로 떠오르는 분위기다. 지난해 말 삼성중공업 임직원 6명이 내부 감사 결과 협력업체로부터 각종 접대를 받은 사실이 드러나 해고됐다. 그런데 올 들어서도 삼성중공업 부품 구매, 설계부서와 협력업체 간의 ‘갑을’ 관계가 불거지면서 회사 임원들은 자칫 검찰 수사를 받지 않을까 전전긍긍하는 모습이다.

한 재계 관계자는 “12월 초 삼성 사장단 인사에서 삼성전자 출신 CEO가 전격 부임할 것이란 소문이 팽배하다. ‘신상필벌’ 원칙으로 분위기 쇄신을 꾀할 가능성이 높다는 전언이다. 임원들이 대거 물갈이되는 것도 당연한 수순이란 수군거림이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고 전한다.
삼성엔지니어링도 사정은 별반 다를 바 없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삼성엔지니어링은 ‘목에 힘주는’ 계열사였다. 중동 플랜트 시장 호황 덕분에 2008년 13억달러 정도에 불과했던 삼성엔지니어링의 해외 수주액은 지난해 105억달러로 급증했다. 해외 플랜트 수주가 늘고 직원이 급증하면서 서울 상일동에 신사옥을 지어 입주하는 등 그야말로 전성기를 맞았다.

하지만 삼성엔지니어링 상승세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올 들어 해외 공사 덤핑 수주와 현장 관리 등 문제점이 발생하면서 3분기 연속 영업적자를 내고 있다. 3분기에는 역대 최대 규모인 7468억원 손실을 기록하면서 올해 누적 적자 규모만 1조원을 넘었다.

게다가 지난 7월 울산 삼성정밀화학 물탱크 현장에서는 3명이 숨지고 12명이 다친 사고까지 벌어졌다. 삼성그룹은 원청업체인 삼성엔지니어링 책임을 물어 지난 8월 박기석 사장을 전격 경질하고 박중흠 사장을 구원투수로 보냈다. 실적 부진에 대내외 악재까지 겹치자 삼성그룹은 최근 삼성전자 핵심 인력을 삼성엔지니어링에 투입하는 등 체질 개선에 힘쓰는 모습이다. 경영혁신 전문가로 꼽히는 정진동 삼성전자 전무를 비롯해 20여명의 삼성전자 경영혁신팀 인력을 ‘경영선진화태스크포스(TF)팀’이라는 이름 아래 배치했다.

하지만 당장 체질 개선에 성공할지는 미지수다. 조윤호 대신증권 애널리스트는 “1조원 이상 손실을 털어냈지만 해외 프로젝트 현장에서 공사 기간 지연 사태가 자주 발생해 아직은 불안하다”고 분석했다. 또 다른 증권가 애널리스트도 “삼성엔지니어링 위기는 해외 수주 부진 탓인데 수주 전략에 문외한인 삼성전자 경영혁신 전문가들이 투입된다고 해서 실적 개선에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석유화학 계열사들도 이름값을 못 하고 있다. 삼성그룹은 삼성토탈, 삼성석유화학, 삼성정밀화학, 삼성BP화학, 삼성종합화학 등 총 5개 화학 계열사를 보유했다.
하지만 계열사 숫자만 많을 뿐 이들 계열사 매출을 모두 합쳐도 경쟁사 LG화학의 절반도 채 안 된다(지난해 기준). 심지어 영업이익은 20%에도 못 미치는 형편이다. 삼성정밀화학의 경우 3분기 매출 3247억원, 영업이익 18억원이라는 초라한 성적표를 내놓았다. LG화학 3분기 매출이 5조8651억원, 영업이익 5162억원인 것과 비교하면 갈 길이 멀다. 사정이 이렇다 보니 지난해부터 삼성석유화학, 삼성정밀화학 등 석유화학 계열사 간 합병설이 끊이질 않는다.

삼성SDI 성적표도 민망한 수준이다. 3분기 매출 1조2966억원, 영업이익 291억원으로 영업이익률이 2%대에 불과하다. 영업이익만 놓고 보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66% 감소했다. 증권가에서는 삼성SDI가 신수종 사업으로 추진해온 에너지저장장치(ESS) 사업의 경우 올해 203억원 영업적자를 기록할 것으로 내다본다.

재계에선 삼성그룹에서 삼성전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고 나머지 계열사 실적은 악화되는 ‘양극화’가 갈수록 심해질 것으로 내다본다. 실제 지난 2분기 기준 삼성그룹 전체 영업이익의 90%를 삼성전자에서 거둬들였다. 이렇다 보니 삼성전자를 제외한 나머지 계열사 경영진들은 실적 압박에 시달릴 수밖에 없다. 연말 인사철을 앞두고 각 계열사에서 인사 향방에만 촉각을 곤두세우는 분위기가 팽배한 데는 이런 배경이 있다. 한편에서는 이들 계열사들이 최근 부실, 저가 수주에 시달리는 것은 자체적인 문제도 있지만 그룹 고위층이 삼성전자 수준의 실적 상승세와 경영혁신을 요구한 데 따른 부작용이란 목소리도 터져 나온다.

그룹 차원에서 삼성전자를 최후방으로 한 전자 분야 수직계열화를 진행해온 것도 논란이다. 삼성전자는 이미 삼성전기, SDI, 디스플레이 등 계열사들의 최대 고객사로 부상하며 협력관계를 강화하는 중이다. 만약 삼성전자 성장세가 둔화된다면 계열사들도 연쇄적으로 타격을 받으며 수직계열화가 오히려 부메랑으로 돌아올 수 있다. 머지않아 삼성그룹이 삼성전자그룹, 후자(삼성전자의 뒤에 있는 회사)그룹으로 나뉠 거라는 우스갯소리도 나온다.

“삼성전자 약진, 다른 계열사 부진이 지속되면 이재용, 이부진, 이서현으로 이어지는 후계구도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전자를 중심으로 한 전자 계열사를 가져가고 나머지 호텔, 면세점, 식품은 이부진 사장, 패션은 이서현 부사장이 나눠 갖는 시나리오가 유력한데 엔지니어링, 중공업, 화학 계열사는 자칫 ‘계륵’ 신세로 전락할 가능성도 있다.” 한 재계 관계자 얘기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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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경닷컴 김경민